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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초중고딩과 싸우는 대통령, 조중동과 싸운 대통령

요즘 인터넷 댓글 가운데 단연 압권은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이다. 노무현 참여정부가 임기 내내 수구언론과 '이유 있는' 싸움으로 일관한 데 빗대어 고작 어린 학생들과 대거리나 하는 이명박 정부의 유치한 아마추어리즘을 조롱하는 이 통렬한 풍자에 언뜻 속이 후련하기도 하지만, 그 내막을 헤아리자면 이내 섬뜩한 불안과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고야 만다. 나만 이럴까.

지금, 이 극명한 대비의 한 당사자는 고향마을에 내려와 두 다리 쭉 뻗고, 편한 밥숟가락을 들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를 아마추어라고 비판하고 꾸짖으며 끝내 청와대에 입성한 다른 한 당사자는 겨우 백일도 채 안 돼 초중고학생들에게조차 조롱과 '물러나라'는 험한 삿대질을 받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겠나 싶다.

참으로 딱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세상에 어린이나 자식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하긴 돈이면 못할 게 없는 '강부자'들이 어찌 보통사람들의 '학부모 노릇'과 '학생 노릇'의 힘겨운 사정과 형편을 헤아리겠는가.

초중고생과 싸우는 대통령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아뤤지'인지, '어뤤지'인지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영어몰입교육을 한다면서 학교와 가정을 발칵 뒤집어놓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손바닥만 한 국토를 세 동강 네 동강 내는 '대운하'를 강행하겠다 하여 초등학생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묻는다. "겨울에 운하가 얼면 배가 어떻게 다녀요?"

이뿐인가. 4·15학교자율화조치는 '0교시 수업과 심야 보충자율학습 부활' '우열반 편성 허용' '영리단체에 방과 후 학교 위탁운영과 사설 모의고사 허용' '어린이신문 강제구독 금지 해제' 따위로 학생들에게 다시 입시교육의 차꼬를 단단히 채워버렸다. 말이 좋아 '부활' '허용' '해제'이지, '살인적인 입시제도의 부활'이자, '사설학원의 학교진입 허용'이자, '기업과 업체들의 학교에서의 영업 금지조치 해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마디로 4·15학교자율화조치는 학교자율화를 빙자하여 학교를 시장화하는 공교육 포기 정책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미국산 쇠고기와 유전자조작 옥수수까지 조건 없이 개방하여 국민의 밥상과 아이들의 군것질거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또 미국 대통령의 산장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골프 카트를 손수 운전하고 우리말로 해도 될 연설을 굳이 아이들보다 더 매끄럽지 못한 영어로 했던 일은 외교적 기법이라 치자. 그러나 일본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비위를 맞춘 일은 온 국민의 비위를 한껏 상하게 해버렸다.

교육, 건강, 국토, 환경, 애국심까지 한국사회의 아킬레스건을 모조리 건드린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한 고등학생의 인터넷 아고라 청원이 불과 며칠 만에 백만 명이 훌쩍 넘는 서명을 받아내고, 마침내 부모님과 손잡은 아이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미친 소, 안 돼!" "미친 교육, 안 돼!"

전국으로 번지는 촛불 행진

그 촛불 행진은 이제 학생들에서 어른들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에 부랴부랴 불길을 잡겠다는 정부의 대응은 참으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의 배후를 들먹이고, 인터넷에 의견을 낸 사람들까지 색출하여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며칠 전에는 경찰이 촛불시위 집회 신고를 낸 고3 학생을 수업 중에 끌어내 추궁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또 지난 토요일 청계천 촛불문화제에는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의 교감, 장학사 1000여 명을 파견해서 빈축을 사는 꼬락서니라니, 이러니 이 정부는 이런 낯 뜨거운 조롱을 받는 것이 아닌가.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고.

전교조 결성 즈음에 익히 봐왔던 풍경을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 또다시 목격하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번에는 내가 묻고 싶다. "대한민국, 정말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거냐?"

모름지기 아이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본 대로 배운 대로 행하는 존재들이다. 이미 '탄핵'을 이 정권으로부터 학습한 세대다. 그리고 독서와 통합논술로 무장하여 스스로 논리와 정보매체를 생산할 줄 아는 '똑 부러지는' 세대들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아이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야말로 우리 어른들, 나아가 우리 국가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정부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 정부와 대거리하는 아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보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인태(교육학박사·경남작가회의회장)

* 경남도민일보 독자 칼럼인 '발언대'에 실린 글입니다. 저자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로 포스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