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민/사회

자식처럼 돌보며 키웠는데…살처분 보내는 늙은 양계농의 눈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산시 상북면 한 양계장에서 주인이 살처분을 위해 포대에 담겨 트럭에 실려가는 닭의 마지막 모습을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김중걸 기자  
 

"떠나 보내는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배라도 불려 보내는 심경으로 마지막 모이를 줍니다."

AI 발병으로 대규모 살처분이 막바지에 치닫는 가운데 20일 오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 한 양계농가의 주인 김모(60) 씨는 곧 살처분 작업을 앞둔 닭들에게 마지막 모이를 주면서 목이 멨다.

김 씨는 모이를 주기 위해 계사 내 사료통 앞에 다가서자 그동안 자식 같이 키웠던 닭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며 모이통 앞으로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김 씨가 닭에게 주는 모이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날 김 씨는 열심히 모이를 쪼아대는 닭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허탈감과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1년여 동안 열심히 달걀을 낳아주던 닭들은 오늘 저녁이면 산채로 포대에 담겨 땅속으로 모두 매몰 처리되기 때문이다.

자식처럼 돌보며 키웠는데

김 씨는 모이를 쪼아대는 닭들을 뒤로한 채 농장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담배를 끊었으나 AI 발병이후 다시 담배를 찾게 됐다는 김 씨.

김 씨의 양계장은 4년 전에도 양산지역에 AI가 발병하면서 자식 같은 닭들을 모두 땅에 묻어야만 했다. 김 씨는 이 같은 악몽이 이번에 또다시 되풀이되자 양계 일에 진저리를 쳤다.

그는 "우리가 키우는 닭은 육계가 아닌 산란계인데…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알을 낳아 주던 자식 같은 닭을 또 한 번 산채로 땅에 묻는다고 생각하니 착잡하다" 며 "4년 전의 살처분을 되풀이 하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토로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 씨의 농장은 발생농가와는 2.79㎞가 떨어져 있으나 발생농가 반경 3㎞에 포함되면서 멀쩡한 닭 3만 2000여 마리를 살처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또 김씨의 여동생이 경영하고 있는 농장의 산란계 1만 2000마리도 살처분 대상이어서 오누이가 기르는 4만 4000여 마리를 모두 땅에 묻게 됐다.

김 씨는 "인근 울산과 부산에 AI가 발병했다고 했을 때 4년 전인 2004년 AI 발병 때를 생각해 양계장 출입문을 막고 온 가족이 모두 나서 방역에 온 힘을 다했는데 참 허탈하다"고 말한 뒤 "살려고 퍼덕이는 닭들을 땅에 묻는다고 생각하니 맴(마음)이 아프다"며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김 씨와 김 씨의 여동생 농장에는 20일 오후부터 전문인력 20여 명이 투입돼 밤샘작업을 거쳐 4만 3000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와 내석리 7 양계농가에서는 전문인력 334명과 군병력 200명, 공무원 110명 등 모두 644명이 투입돼 살처분을 진행했다.

이날 작업반은 애초 19만 3000마리를 처리하기로 했으나 15만 마리가량만 살처분 작업을 했다. 또한 한 양계장 주인 김모(58) 씨는 산채로 포대에 담겨 트럭에 실려 매몰 장으로 떠나가는 닭들을 보면서 "한창 알을 낳고 있을 때인데, 자식 같이 키운 닭을 땅에 묻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다른 농장의 주인 박모(68) 씨도 차마 산채로 땅에 묻히는 닭들을 볼 수가 없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닭장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농민 살처분 앞둔 닭 마지막 모이 주며 눈시울 붉혀

인근 농장의 김 씨(62)는 "올해 AI 발병 패턴을 보면 해마다 AI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며 "AI 발병 때마다 발병과 상관없는 멀쩡히 살아 있는 닭들을 생매장해야 할 것이냐"고 반문하며 정부의 천편일률적인 방역 지침을 비난했다.

한편 농가들은 빈 닭장에 AI사태가 정상화돼 이른 시일 안 닭을 들여와 닭들이 알을 낳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이날 살처분 작업에 투입된 작업반원들도 방역 복과 보호안경까지 착용하고 좁은 닭장과 5월의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는 매몰 구덩이를 오가며 비지땀을 흘리며 막바지 살처분을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경남도민일보 김중걸 기자 (원문 보기)

2008/05/16 - [전체 글] - AI 불똥 노무현 전대통령도 '갑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