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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르포]초중고 '재난대비훈련' 졸거나 장난

재난방송 잠깐 들으면 '끝'…교사·학생 심드렁
체계적 매뉴얼 없이 시간만 때워 "이게 무슨 훈련…"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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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 등 재난 대비를 위한 민방위 훈련날인 27일 오후 학생들이 대피훈련을 했다. /김구연 기자 sajin@  
 
27일 오후 2시 경남 도내 각급 학교 교정에 재난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5분 전께 충북 보은지역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여진으로 학교 시설이 붕괴할 우려가 있자 도내 유치원과 전 초·중·고교에 긴급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물론 가상상황이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이후 소방방재청이 준비한 '2008 재난대응 안전훈련'과 병행해 경남도교육청이 마련한 '지진·화재대피 현장훈련'의 일환이다.

이번 훈련의 시범학교로 지정된 진해 동부초등학교 교정에도 어김없이 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사이렌을 들은 아이들은 지도교사들의 지시에 따라 모두 준비한 방석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책상 밑에 몸을 숨겼다. 이후 담임교사들이 비상구를 통해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안전하게 대피시켰고, 이어 도착한 소방차가 화재를 완벽하게 진압했다. 일사불란한 훈련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부교육감까지 직접 나서 훈련을 지켜본 동부초교 외에 다른 유치원과 학교는 이날 훈련이 어떤 식이었을까? 같은 날 같은 시각 마산과 창원지역 학교의 풍경은 이랬다.

오후 2시 창원 ○○고등학교 한 3학년 교실. 사이렌이 울리는데도 학생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자세히 보니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학생도 보인다. 3학년 담임선생님도 학생들과 같이 졸거나 복도에서 가벼운 운동을 하는 등 대체로 훈련에 무관심했다.

이 학교 재난대응 현장훈련 계획을 보면 '재난 위험 경보가 울리면 모든 학생이 3분 정도 책상 밑으로 최대한 웅크리고 숨는다'고 돼 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는 2시 20분까지 재난 방송을 듣는 게 전부다.

이날 1, 2학년 교실과 3학년 1반 교실은 책상 밑으로 웅크리는 정도라도 훈련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오후 2시 10분께 제자리에 앉으라는 방송이 나간 뒤에는 모두 자율학습을 했다.

일부나마 훈련에 참가했던 3학년 학생은 훈련의 효과를 의심한다. 한 3학년 학생은 "중국 지진 보도를 보니 건물 자체가 무너지던데 책상 밑에 들어가 있는 훈련만으로 실제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실제로 지진이 나면 정신이 없고 어수선해서 그냥 본능적으로 건물을 나가려고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3학년 학생은 "장난처럼 하는 것 같아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시각 창원의 ○○초등학교에서도 3~6학년 학생들이 훈련에 참가했는데 역시 책상 밑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게 전부였다. 훈련에 참가한 한 6학년 학생은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 머리를 숙이고 책상 밑에 있기만 했다"며 "밖에 나가지 않아 재미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4학년 학생은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요령을 알려 주었느냐는 물음에 '침착하게'라는 말만 기억난다고 말하며 웃었다.

마산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산 ○○고등학교와 마산 ○○중학교에서도 훈련은 진행됐다. 하지만, 1시 40분부터 2시 30분까지 시간에 따라 체계적으로 훈련을 이행한 학교는 없었다.

오후 1시 40분 마산○○고. '재난대응 안전 한국훈련'이라는 동영상을 학급별로 시청하고 있다. 각 학급에 TV가 켜져 있지만 이를 제대로 보는 학생은 드물었다. 대다수 학생이 엎드려 자거나 친구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2시 경보방송은 준비한 방석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책상 안으로 대피하라고 일러줬지만 이를 따르는 학급은 단 두 곳. 3학년 김모 군은 "지금 다들 잔다. 무슨 요령을 가르쳐 주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이 학교 학생 부장 교사는 "어제 교육청 사이트가 계속 다운됐다. 어젯밤 내내 훈련 동영상을 내려받느라 잠도 못 잤다"며 "제대로 교육을 하기 위한 여건부터 마련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이날 아이들이 지진 대피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 앞으로 나왔다는 한 학부모는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학부모 김모(38·창원시 내동) 씨는 "학교에서 실제와 같이 훈련을 한다고 해서 괜찮겠다 싶었는데 직접 와보니 시청각 교육 중심이어서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날 도내 유치원을 비롯해 전 초·중·고교에서 펼쳐진 '지진과 화재대비 현장 훈련'의 목표를 도교육청은 이렇게 밝혔다. '각종 재난대비 안전의식 고취와 상황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능력 함양.'

도교육청은 아울러 이날의 훈련결과를 오는 29일까지 지역교육청별로 일괄 보고받을 예정이다. 도내 지역교육청들의 결과통보 내용이 궁금해진다.

/경남도민일보 시민사회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