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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처리 특례법 폐지? 접촉사고만 나도 '전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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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손해보험업계에서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폐지를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  

운전자는 언제나 교통사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아주 가벼운 접촉 정도가 아니라면 대부분 사고는 피해자 신체 또는 재산에 큰 손해를 입힌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당연히 이를 보상해야 하고 피해 정도가 심하면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사소한 시비가 붙어서 생긴 사고도 심하면 보상은 물론 민·형사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평범한 교통사고에서 가해자가 기소되는 일은 드물다. 이는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사고를 내도 기소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때문이다.

최근 손해보험업계에서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법이 교통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면제 규정을 둬 운전자 안전 의식이 낮아진다는 게 명분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비자 단체에서는 보험사가 쉽게 수익을 올리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이란 =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형사처벌 등 특례를 정한 법이다. 1981년에 만들어졌으며 최근 개정된 시기는 올해 3월이다. 가해자가 적절한 보상을 했다면 피해자 뜻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으며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한 운전자에게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운전자가 사고를 내고도 피해자 구호 같은 조치 없이 도망치는 등 가해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는 특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등 중요 교통 규칙을 어겨서 생긴 사고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에게 적정한 보상을 한 가해자가 다시 법적 처벌을 받아 이중으로 고통을 겪게 하지 않고자 만들어진 법이라고 보면 된다.

손해보험업계 "교통사고 줄고 보험료도 인하 일석이조"

◇보험사 "특례법이 안전 불감증 조장" = 최근 손해보험업계는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폐지 추진에 뜻을 모으고 협력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이 정한 형사처벌 면제 규정이 인명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를 만든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관련 부처에 법안 폐지를 꾸준히 건의했다.한 보험사 관계자는 "단순 폭행이나 과실 치사 같은 사고도 법적 책임을 지는데, 더 큰 피해를 안길 수 있는 자동차 사고 가해자가 보험에 가입했다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다 알아서 해 준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운전자가 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험사 주장은 가만히 앉아서 수익을 챙기려 한다는 비난과 마주친다. 가해자가 이중으로 겪는 고통은 외면한 채 법을 고쳐 사고만 줄여보겠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사고가 줄면 당연히 보험사 수익은 높아진다. 하지만, 보험사도 할 말은 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사고가 줄면 보험사 수익이 높아지는 것은 맞겠지만 사고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면 줄이는 게 모두에게 이익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사고가 줄면 대다수 가입자가 비싼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가입자에게도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비자 단체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당장 반발하고 있다.

소비자 연맹 "법 체계 이용 수익만 챙기려는 위험한 발상"

◇보험소비자연맹 "소비자 권익 먼저 보호해야" = 보험소비자연맹은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폐지 추진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연맹은 손해보험업계 움직임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이익을 키우려는 이기주의적 발상이라고 못 박았다.

연맹이 폐지 반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대다수 운전자가 기소처분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운전자는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교통사고는 작은 사고도 피해 정도만 따지면 현재 법 제도에서 대부분 기소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맹 관계자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쉽게 회복할 수 있는 사고조차 기소처분 대상이 된다면 수많은 범죄자만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맹은 또 무보험 차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 운전자가 자동차 종합보험에 의무처럼 가입했던 것은 특례법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보험으로 사고 보상을 하고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면 많은 운전자가 보험 가입을 꺼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보험 가입자가 줄면 사고 피해자에게도 더 큰 손해를 안길 수 있다.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차량에 사고를 당하면 결국 회복까지 드는 비용이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연맹 관계자는 "특례법 폐지는 업계 바람과 달리 보험 가입자 수는 줄고 사회적 손실은 더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부분 교통사고 가해자들이 공소 제기 대상이 되면서 드는 사회·경제적 비용도 지적됐다.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피하고자 합의 또는 소송 등 과정을 거치면서 치러야 할 비용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특례법 폐지 주장은 사회 공공 이익은 무시한 채 업계 이익만 따져 법 체계를 바꾸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경남도민일보 이승환 기자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