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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국보 세병관서 시장 동창회 행사 - 국회의원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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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초등학교 총동창회가 국보 305호로 지정된 통영시 세병관에서 진의장 통영시장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2일 동창회장 이·취임식 행사를 열어 물의를 빚었다.  오른쪽에 앉아있는 4명 중 맨 왼쪽이 이군현 국회의원, 두번째가 진의장 통영시장. /통영 인터넷 신문 제공  
 
국보1호인 숭례문 방화사건의 아픔이 국민의 가슴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통영초등학교 총동창회가 국보 305호로 지정된 관내 세병관에서 통영시장과 국회의원이 참석한 동창회장 이·취임식 행사를 연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국보인 세병관을 동창회 장소로 허가를 내준 통영시에 대한 비난과 더불어 방화관리 책임을 져야 할 단체장마저 이자리에 참석했다는 사실에 대해 시민들의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14일 통영시에 따르면 통영초교 총동창회는 지난 12일 진의장 통영시장을 비롯해 이군현 지역 국회의원 등 200여 명의 통영초교 졸업생이 참여한 가운데 조선시대 대표적 목조건축물로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중심건물인 국보305호 세병관에서 제9·10대 총동창회장 이·취임식을 열었다. 아울러 지난달 24일에도 이 학교 명예졸업장을 받은 이군현 지역국회의원 화환 전달식을 세병관에서 연 것으로 확인됐다.

총동창회는 통제영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세병관 뒤편에 학교가 있었고, 50여 년 전 세병관을 교실 대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는 동문들이 개교 100주년을 맞아 어린시절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곳을 행사장소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병관에서는 매년 한산대첩축제 때 조선수군 사열행사인 군점행사와 백일장 대회가 한차례씩 열리고 있을 뿐 지금까지 동창회 같은 사적 행사를 시가 허가한 전례가 없는데다 문화재 보호차원에서라도 이해하기 힘든 몰상식 행정이라는 시민들의 거센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한 시민은 "세병관이 국보급 문화재면서 관광객들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관광지인데 사적 행사에 장소를 빌려준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관내 동창회 행사 개최문의가 들어온다면 시가 어떻게 처리할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시민은 "예전 통영초교 동문들의 배움터였다는 추억은 충분히 이해는 가나 세병관이 보물급으로 지정돼 있다가 지난 2002년 7월부터 국보급으로 지정되면서 방화를 우려해 라이터 등도 소지 못 하고 출입하는데 하물며 보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단체장과 국회의원이 동문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부담없이 참여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시 관계자는 사용허가에 대해 "세병관 마루는 사용하지 않고 건물 앞마당만 사용하겠다는 공문이 접수돼 허가를 해줬다"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총동창회 측도 "올해 개교 100년을 맞는 통영초교가 옛날 세병관 바로 뒤편에 있었고 세병관이 한때 임시교사로도 사용된 적이 있어 통영초등학교 동창들에게는 의미가 깊은 곳"이라면서 "현재 학교가 세워져 있는 곳은 고령으로 접어든 타지의 동문들이 모를 뿐아니라 화기 등을 사용하지 않아 훼손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은 2004년 9월 검사들의 국제검사협회 전체총회 만찬에 국보 224호인 경복궁 경회루 사용을 허가한데 이어 2005년에도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의 창경궁 명정전 만찬을 허가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세병관은 어떤 곳?

세병관은 1605년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창건 후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될 때까지 290여 년 동안 조선수군을 지휘했던 유서깊은 목조건물로 현 건물은 1872년 제193대 통제사 채동건이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전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각지붕건물인 세병관은 서울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전남 여수진남관(국보 제304호)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다.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다음 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고, 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193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었다.

이 건물은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 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 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단을 올려 전패단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삼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두보의 시 '洗兵馬行'의 마지막 두 구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며, 현판은 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다.



/경남도민일보 최현식 기자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