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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빈의 내 맘대로 세계여행

[내 맘대로 세계여행] (11) 오세아니아 - 호주 자동차여행 '일확천금이 낳은 도시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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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도시에 불과하던 멜버른은 1851년 골드러시로 도약을 맞게 된다. 해외 이민자가 몰려 상권이 형성된 밸러랫의 옛 풍경.  
 

고도를 높인 비행기가 순식간에 뭉게구름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주위가 회칠을 한 듯 온통 하얗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게 꿈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 초원이 펼쳐진다.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하다. 그 사이로 까만 점들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캥거루다.

호주다. 3개월의 아시아 일정을 끝내고 오세아니아 대륙에 발을 디뎠다. 꽤 오랫동안 아시아에 길들여진 눈이 이국의 정취에 낯가림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는 지금껏 보아온 풍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나라보다 77배나 넓은 호주는 사람 수가 2000만 명에 불과하다.

단위면적당 인구밀도가 낮은 만큼 자연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초원과 울창한 산림이 이어지고, 호주의 상징인 캥거루를 비롯해 코알라, 앵무새가 지천이다.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자동차 한 대를 빌렸다. 땅덩이가 큰 호주는 상대적으로 대중교통의 발달이 더뎌 구석구석을 둘러보기 위해선 자가 차량이 필수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에 비해 자동차 대여비는 저렴했다. 차량점검을 마친 후 지도와 취사용품, 방한복 등 긴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고 도시별 여행 정보를 수집했다.

1800년대 금맥 발견, 세계 각지서 황금사냥꾼 몰리며 100년 간 번성

장도에 오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 호주에 살고 있는 사촌 동생과 함께 대륙종단에 나섰다. 호주의 주요 도시는 동쪽 해안을 따라 조성돼 있다. 동해안과 서해안을 제외한 중앙부는 척박한 환경 탓에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하기 때문. 우리는 동해안 아래쪽에서 위쪽까지 약 4000km에 이르는 해안도로를 따라 종단하기로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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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광이 처음으로 발견된 발라렛의 소버린 힐.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사금을 채취하고 있다.  
 

첫 목적지인 빅토리아 주의 주도 멜버른(Melbourne)은 시드니에 이은 호주 제2의 도시로 꼽힌다. 20세기 들어 시드니에 주도권을 내주기 전까지 호주의 경제·문화·교육 전반을 이끌었던 멜버른은 일확천금의 꿈이 낳은 도시다.

1851년, 호주 남동부의 한낱 작은 교회도시에 불과하던 멜버른이 북적대기 시작한다. 서쪽 근교의 밸러랫(Ballaret)을 중심으로 대규모 금맥이 발견되자, 세계각지에서 '황금사냥꾼'이 몰려든 것. 호주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을 비롯해 유럽 및 북미 각국과 중국 등지에서 금을 찾기 위한 행렬이 줄을 이었다.

'골드러시'(Gold Rush)로 인구가 늘자, 멜버른 경제는 급속히 발전한다. 양으로 가득했던 마을에 상점과 숙소가 생겨나고, 금광단지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멜버른은 100년이 넘게 호주 최대 도시로 군림한다.

반나절 동안 채취 체험 '아… 인간의 욕심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호주 종단에 나선 지 이틀째, '골드러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밸러랫을 찾았다. 역사적인 장소인 만큼 주 정부는 금맥이 처음 발견된 소버린 힐(Sovereign Hill)을 민속촌으로 지정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소버린 힐은 19세기 금광을 중심으로 형성된 상업·주거지역이다. 민속촌답게 이곳에는 호주 근세의 가옥구조와 전통의상이 즐비해 당시 '황금사냥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금광이 자리한 계곡에서는 아직도 사금 채취가 가능하다.

실제로 이날 소버린 힐을 찾은 이들이 옛 방식대로 금을 찾고 있었다. 절차는 간단하다. 쇠로 된 양동이에 계곡 밑바닥의 흙을 담고, 자갈과 굵은 모래를 솎아낸다. 고운 결정의 모래만 남긴 후 그 속에서 반짝이는 사금을 채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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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호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사람 손에 해바라기 씨를 올려놓자 앵무새가 올라와 먹고 있다.  
 

사촌 동생과 함께 양동이를 집어들고, 금을 캐는 행렬에 동참했다. 얼핏 쉬워 보이던 것과 달리 금 채취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한겨울(남반구에 있는 호주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계절로 현재 겨울임)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손을 담그자, 뼛속까지 한기가 밀려왔다.

2시간이 넘도록 모래와 씨름을 벌였지만, 허탕이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계곡물에 퉁퉁 불어터진 손을 녹여가며 반나절 동안 금을 찾은 끝에, 겨우 귀지만 한 사금 한 조각을 얻었다.

재미삼아 시작한 사금 채취는 은근히 사람의 욕심을 자극했다. 우리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려던 많은 이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금을 찾는데 열중했다. 금광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가 오갔다. 그러니 '골드러시' 시절, 목숨을 걸고 대륙을 건너온 '황금사냥꾼'의 심정은 오죽했으랴.

/경남도민일보 윤유빈 객원기자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