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태평양 전쟁 희생자 위로"…시의회 "더 많은 여론수렴 있어야"
경남 사천시가 지난해 중순부터 추진해 온 조선인 출신 가미카제 특공대 탁경현의 위령비 건립 사업이 지역민들의 여론수렴과 논의를 거치지 않고 추진돼 사천시의회를 비롯한 사천시민, 누리꾼들의 반발이 거세다.
위령비 주인공인 탁경현은 지난 1920년 사천시 서포면 출신으로 1926년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도항해 일본에서 미쓰야마 부미히로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고 대학을 나온 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가미카제 대원으로 활동하다 1945년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한 인물로 야스쿠니신사에 위패로 남아있다.
일본 입명관(리쓰메이칸) 중학교와 교토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항공대에 입대, 가미카제에 차출됐으며 자살 공격 전 송별식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1년 일본에서는 탁경현을 모델로 숨진 한국인 가미카제 약혼자와 살아남은 일본인 가미카제 대원의 사랑을 그린 영화 <호타루>가 제작되기도 했다.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52) 씨로부터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조선인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사천시가 위령비 건립 터 등을 제공했다. 17년 전 꿈속에서 한국인 가미카제 청년의 꿈을 꾸었다는 구로다 후쿠미씨는 위령비 건립을 위해 여러 차례 탁경현의 고향을 방문해 유족과 시 관계자와 논의를 했으며 지난 3월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위령비 건립 계획을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의회와 시민 단체들로 구성된 사천진보연합 등이 반발하고 나서 위령비 건립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민노당 이정희 사천시의원은 "시가 지난 4월 초에 열린 시의회 임시회 때 보고를 통해 알았다"며 "절차상 맞지 않고 위령비 건립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 여러 의원이 반대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또 "위령비 건립을 하려면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대한 사과가 선행돼야 하고 시가 위령비를 건립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 관계자는 "탁경현 한 명을 위한 위령비가 아니라 태평양 전쟁에서 억울하게 숨진 사천 지역민들의 넋을 기리는 비"라며 "한·일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고자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는 배경 설명과 함께 제막식 행사는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위령비 건립 추진위원회 홍종필 동경대 교수는 "탁경현은 알려진 것과 달리 태평양 전쟁에 강제동원됐다"며 "우리의 지난 슬픈 역사가 다시 나타나지 않게 이들의 안타까운 과거를 밝혀내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라고 주장해 진보연합 측과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또한, 위령비 건립 추진위는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와 함께 오는 9일 위령비 건립에 반대하는 단체와 토론회를 할 것을 제안했다.
사천진보연합 반발 "가미카제 특공대원 위령비 안될 말" 사천시 공무원 노조와 농민회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사천진보연합이 6일 오후 시청 브리핑실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원 탁경현 위령비 건립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신 기자 사천시 공무원노조와 농민회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사천진보연합은 6일 오후 1시 사천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의견 수렴과 검증도 없이 일본 사관학교에 자원입대해 가미카제 대원으로 일제를 위해 싸우다 사망한 탁경현의 위령비 건립을 위한 지원을 즉각 중단해 줄 것"을 사천시에 요구했다. 이들은 시의 위령비 건립 지원과 관련해 "관광자원으로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는 명분으로 시가 터와 기반조성 등을 지원하고 나선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반박했다. 또 "평화와 화해는 과거의 반성과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가 우선돼야 하고 침략전쟁 반성과 사죄 없는 위령비 건립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하고 "오는 10일 예정된 위령비 제막식을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남도민일보 김영신 기자 (원문 보기) |
"꿈에 본 가미카제 조선청년 못 잊어"
일본 여배우 구로다, 사천에 탁경현 추모비 건립
일본 한 여배우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조선인 청년 고향에 추모비가 세워진다.
조선인 청년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집돼 가마카제특공대원으로 활동하다 1945년 5월 일본 오키나와 해상에서 숨진 탁경현 씨.
탁 씨의 고향은 사천시 서포면 외구리 남구마을.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게 된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51·黑田福美)씨가 지난 91년 꿈 속에서 만난 조선청년이 "비행기를 조종하며 죽는 것에 후회는 없지만 조선사람이 일본사람 이름으로 죽는 것이 억울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
이후 구로다 씨는 이 청년의 실체 파악을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지난 95년 〈요미우리신문〉에 꿈의 내용을 칼럼으로 실은 뒤 "그가 가미카제특공대원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정적인 제보와 함께 사진을 보고 꿈 속의 청년이란 확신을 가졌다.
조선 청년의 한국이름이 탁경현이란 사실도 알아냈다.
이 때부터 탁 씨의 자료를 추적해 교토(京都)에서 탁 씨의 가계 자료와 소학교, 중학교, 교토 약학전문학교의 학적부까지 찾아냈고 탁 씨와의 인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구로다 씨는 그의 고향에 비석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이런 과정에서 구로다 씨는 일본에 강제징집된 한국인들의 신원을 찾는 데 노력해 온 홍종필(71) 전 명지대 교수의 주선으로 탁 씨의 유족들도 만났으며 오키나와 '평화의 초석'(태평양전쟁 전사자 23만8000여 명(한국인 309명 포함)의 이름을 새겨 놓은 추모공원)에 탁 씨의 이름도 발견하게 됐다.
추모비 건립은 생각만큼 쉬운일이 아니었다. "서포면에서 한국 청년 250여 명이 끌려갔는데 왜 탁 씨 비석만 세우려고 하느냐"는 지역민들의 반대에 홍 전 교수와 함께 서포면을 방문, 끈질긴 설득으로 끝에 주민들의 동의도 받았다.
추모비 건립을 위해 16년간을 헌신해 온 구로다 씨는 '평화스러운 서포에서 태어나 낯선 땅 오키나와에서 생을 마친 탁경현. 영혼이나마 그리던 고향 땅 산하로 돌아와 평안하게 잠드소서'란 귀향기원 비문까지 새겨 놓고 건립 날짜가 정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 논픽션 <호타루 가에루(반딧불이 돌아오다)>와 영화 <호타루>의 모델이기도 한 탁 씨는 1922년 생으로 일본 교토시 오가다소학교와 리츠메이칸중학교, 교토 약학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에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참전, 1945년 5월 10일께 전사,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경남도민일보 김영신 기자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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