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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빈의 내 맘대로 세계여행

[내맘대로 세계여행](12) 오세아니아-호주 자동차 여행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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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한해 수백만 마리 희생…곳곳 사체 흔적에 여행길 심란

"어, 저게 뭐야! 브레이크, 브레이크!"

시속 100km로 달리던 자동차가 파열음을 내더니 가까스로 멈춰 섰다. 한밤중 도로 앞을 막아선 시커먼 물체는 다름 아닌 캥거루였다. 급정거에 놀란 건 사람뿐이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큰 눈을 멀뚱거리더니, 캥거루는 이내 총총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간다.

빅토리아 주를 떠나 호주 제1 도시 시드니로 향하던 중 겪은 일이다. 다행히 뒤따르던 차가 없어 무사했지만,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호주에서 야간운전은 매우 위험하다. 땅덩이가 넓다 보니 도심을 제외한 외곽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대부분의 도로가 산이나 초원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탓에 야생동물의 '로드 킬'이 잦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사촌 동생과 나는 해가 지면 운전을 삼가고, 차 안에서 잠을 자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4000km에 달하는 장거리 여행에는 변수가 자리하는 법. 칠흑같이 어두운 산중에서 잠을 청하려다 야생동물의 처연한 울음소리와 뼛속까지 밀려드는 한기에 떠밀려 야간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밤중 목도한 도로 위 풍경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차체에 부딪히고 바퀴에 깔려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든 동물 사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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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리아주에서 시드니에 이르는 1200km의 도로. 산과 초원의 허리를 잘라 만든 만큼 야생동물의 '로드 킬'이 심각하다.  
 

호주에서 '로드 킬'로 목숨을 잃는 야생동물은 한 해 수백만 마리에 이른다. 이들의 개체 수 감소는 곧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또 덩치 큰 동물과 충돌할 때 인명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호주 정부는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야생동물 출몰에 대비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의무화하거나, 각 도로의 규정 속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예방에 힘쓰고 있다.

문득 여행 전 보았던 단편영화가 떠올랐다. '로드 킬'의 심각성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생의 흔적이 난무한 도로 위에서 감독은 짧은 단상으로 개발만능주의에 빠진 인간의 잔혹함을 꼬집는다.

"우리는 이곳을 '길'이라 부르지만, 저들은 이곳을 '집'이라 부른다."  그 메시지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지금까지 기억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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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시드니를 대표하는 하버브리지, 20세기 불어닥친 경제공황을 타개하고자 만든 철골구조물이다.  
 

새벽녘 '오페라하우스와 조우'

하버브리지와 함께 웅장함 자랑…'역시 세계 3대 미항' 감탄 연발

이런저런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차창 밖으로 동이 터 올랐다. 잠을 설친데다 밤새 신경을 곤두세운 탓인지 뒷목이 뻐근했다. 지친 몸을 추스르려 갓길에 차를 대고, 기지개를 켜는 찰나 사촌 동생이 소리쳤다.

"형! 저기 봐, 오페라하우스야."

먼동 사이로 오렌지를 썰어놓은 모양의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호주의 상징물인 오페라하우스다. 맞은편엔 사진으로만 보아 오던 하버브리지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꼬박 이틀간의 강행군 끝에 드디어 시드니에 발을 디뎠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는 먼발치에서도 도드라질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금빛 파도 사이로 새하얀 요트가 떠다니고,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도심공원은 활기로 가득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눈보단 배를 호강시키는 게 급선무다. 패스트푸드에 상한 속을 달래기엔 내 나라 음식이 제격이다. 미리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식당이 몰린 스트라스필드(Strathfield)를 찾았다.

호주를 대표하는 한인타운답게 거리에는 한글간판이 넘쳐났다. 행인의 말투와 생김 역시 전혀 낯설지 않다. 초입에 자리한 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설렁탕을 시켰다. 얼큰한 국물에 큼지막한 깍두기를 담아,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비웠다. 게걸스러운 모습이 신기했는지 우리를 지켜보던 주인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물으신다.

유학이나 사업차 방문한 사람들만 보다 배낭여행객이 새롭단다. 그러고 보니 식당 안을 메운 사람들 모두 깔끔한 차림새다. 집채만 한 배낭과 산발한 머리,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우리 몰골이 단연 튈 수밖에.

식당을 나와 햇살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았다.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듯하다. 슬며시 하품이 새어나온다.

바삐 움직이는 인파를 보니, 내가 누리는 여유가 슬쩍 미안해진다. 자동차 종단 닷새 만에 찾아든 평온한 아침이다.

/경남도민일보 윤유빈 객원기자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