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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빈의 내 맘대로 세계여행

[내맘대로 세계여행]아시아 - 인도 오르차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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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중세풍의 사원. 한때 신도들로 가득했을 사원은 이제 이끼와 고목의 차지가 됐다.  
 

'나 홀로 여행'은 지독하게 외롭다. 이른 아침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까지 철저히 혼자다. 오가는 여행자끼리 서로의 말벗이 되기도 하지만, 짧은 만남 뒤 찾아오는 고독은 더 짙다. 행여나 몸이라도 아플라치면, 숙소에 덩그렇게 내동댕이쳐진 서러움에 눈물을 쏟기 일쑤다.

그럼에도, '나 홀로 여행'은 자유로워 행복하다. 그저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요, 멎는 곳이 휴식처다. 이름이 알려진 유적지라도 끌리지 않으면 그만이요, 이름 없는 황무지라도 내 마음이 동하면 그곳이 곧 명소가 된다. 여행을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주체가 온전히 '나'이기에.

쓸쓸함이 빚은 묘한 분위기가 고독한 여행객 발목을 붙잡고

인구 2000 명 남짓의 작은 마을 오르차(Orcha)는 '나 홀로 여행'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곳이다. 인도의 최대 관광도시로 꼽히는 '아그라'와 '카주라호' 사이에 위치해, 많은 이가 양 도시를 여행하다 그저 하루쯤 쉬어가는 오르차. 하지만 징검다리 삼아 스쳐 보내기엔 마을의 매력이 너무 컸기에, 무작정 머물러 보기로 결심했다.

이름난 볼거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오르차를 택한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마을이 황량하고 쓸쓸했기 때문이다. 오르차는 적은 인구에 비해 마을 규모가 꽤 큰 편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들녘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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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차의 궁전 중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없다. 성벽이 헐리거나 건물이 곧 내려앉을 듯 위태하다.  
 

하지만 눈이 지루해질 쯤, 중세풍의 거대한 궁전이나 사원이 나타난다. 아무것도 없는 들녘에 뜬금없이 자리한 과거의 유산.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이미 무너져 내려 형태만 남아있거나, 곧 내려앉을 듯 위태로운 자태로 서있다. 황무지와 폐허가 빚어내는 묘한 분위기는 명승고적지로 향하던 내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허허벌판에 불과하지만, 오르차는 한때 권력의 정점에 섰을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다고 한다.

곧 무너질 듯한 성벽은 한때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는 듯

17세기 초 이슬람왕조인 무굴제국이 인도를 호령하던 시기, 수도 아그라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주동자는 악바르 황제의 아들인 살림 왕자. 부자간의 반목이 초래한 반란은 단 4개월 만에 아버지의 승리로 끝난다.

진압군의 추격을 피해 남하하던 살림 왕자는 현재 오르차가 있던 분델라 왕조를 찾는다. 당시 분델라의 마하라자(지방 소국의 지배자)였던 비르 싱 데오는 살림 왕자의 방문으로 깊은 고민에 빠진다. 반란자를 숨겼다 들통 날 경우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게 뻔하고, 그렇다고 현상금 몇 푼에 제국의 왕자를 넘기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마하라자는 살림 왕자에게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판단은 주효했다. 3년 후 악바르 황제가 죽고, 살림 왕자가 차기 황제로 등극한 것. 이때부터 오르차는 황금시대를 맞는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해 준 대가로 황제는 당대 지방 소국에 불과했던 이곳에 무려 55개에 달하는 궁전과 성을 지었다.

또한 황제는 때마다 오르차를 찾아 사냥을 즐기는 등 분델라 왕조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오르차란 지명 역시 당시 사용하던 사냥 용어다. 그 의미는 'Go and catch', 황제가 사냥감을 향해 활을 쏜 후 사냥개에게 'Orcha!'라고 외치던 것이 그대로 지명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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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붉은 꽃 없고, 십년 권세 없다'는 진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말이다. 화려한 시대를 구가하던 오르차는 자신들을 비호하던 황제가 죽고 난 후 나락의 길로 접어든다. 새로운 권력 앞에 모든 특권을 빼앗긴 마하라자. 그는 생애 두 번째로 목숨을 건 도박을 한다. 무굴제국을 상대로 역모를 꾀한 마하라자는 그러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된다.

그 대가는 잔인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궁전과 사원은 철저히 파괴되고, 성 안팎은 잿더미가 됐다. 지금 오르차의 휑한 정경은 당시의 처참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르차에 머무는 내내 무너진 성벽에 올랐다. 드문드문 폐허가 된 유적을 보고 있노라면, 쓴 웃음이 배어 나온다.

'Orcha!'(Go and catch!), 그들이 안간힘으로 잡으려 했던 권력의 실체는 무너진 돌무더기처럼 허망한 것을.

/경남도민일보 윤유빈 객원기자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