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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머리 털나고 연필 처음 잡아본다"

"머리 털나고 연필 처음 잡아본다. 찬찬히 좀 갈차주라. 묵고 살기도 바빴는데 학교는 다 뭣이고. 인자 공부하니까 원이 없다."

지난 16일 오전부터 산양읍 곤리도 경로회관에 20여 명의 할머니가 모여 '아버지', ' 어머니'를 따라 읽으면서 한글을 공부, 덩실덩실 춤이 절로 나오고 있다.

 
 
  통영시 산양읍 곤리도 마을회관에서 박또선아 할머니를 비롯한 20여 명의 할머니들이 한글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통영RCE 제공  
 
통영RCE가 도서지역 주민을 위한 지속가능평생교육인 찾아가는 학교 '우리 섬 배움마실' 한글교실이 개강했기 때문이다.

"아, 야, 어, 여"를 합창하며 유치원 아이들보다 더 천진한 표정을 한 할머니들은 "글자 배우는 게 연속극 보는 것보다 백 배 재미난다"며 다음 수업도 당겨하자고 조르기도 했다. 이에 일일 보조 강사로 나섰던 김종윤 이장님은 "교재가 있으니 나도 가르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밤에도 공부합시다"고 제안, 할머니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통영RCE는 곤리도를 비롯해 연대도, 욕지도, 사량도 등 '배움마실'을 희망하는 섬에 찾아가는 학교를 열고 있다. 농한기인 지난 12일부터 내달 15일까지 1기 학교를 열어본 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우리 섬 배움마실'은 한글교실뿐 아니라 노래교실과 마을 잔치 한마당도 곁들이고 있어 참여자는 계속 늘고 있다.

섬 마을 노인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22일 연대도의 박또선아 할머니(86)는 통영RCE가 나눠주는 교재와 공책에 이름 석 자를 꼭꼭 눌러쓰면서 "못 배운 설움을 이제야 달랜다"고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곤리도의 김종윤 이장은 "할아버지들은 학교라도 다녔지만 할머니들은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분들이 많다. 먹고 살만 해지고 나서도 늘 배움에 배고팠는데, 이렇게 섬에 직접 찾아와주니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통영RCE의 변원정 팀장은 "도서지역의 반응이 이렇게 좋을 것이라곤 미처 생각 못 했다"면서 "희망도서에 '배움 마실'을 상시적으로 여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경남도민일보 최현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