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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열살 연이의 웃음을 지켜주세요

창원시 가음정 본동 철거지역. 오래된 담장으로 겨울 햇살이 내리 쬔다. 손을 대면 따뜻할 것 같다. 여기저기 걸린 술집 간판은 이름만 남긴 채 낡아간다. 조금만 골목을 더 들어가면 여지없이 황망한 풍경들. 무너진 대문이며 담장, 살림살이가 흩어진 마당은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곳에 연이 가족이 산다.

 
 
  열살 연이와 할머니. /굿네이버스 제공  

부모 이혼…할아버지 사업 부도

올해 열 살인 연이와 할아버지(67), 할머니(67), 삼촌(30대 중반) 이렇게 넷이다. 부모님은 연이가 세 살 때 이혼하고서 모두 집을 나갔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연이 가족이 서울에 살 때였다. 지금은 연이가 창원으로 이사를 온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하는 사업으로 식구가 먹고살았다. 삼촌은 자폐증을 앓고 있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할아버지는 부도 내고 말았다. 어려운 와중에도 직원 월급 다 챙겨주고서 남은 돈으로 회사를 살리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결국, 지난 2005년 겨울 연이 가족은 단돈 200만 원을 들고 서울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가음정 본동으로 왔다. 도망치듯 왔기에 전출·전입신고도 못 했고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연이 가족은 지금 행정 근거가 없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용역 회사에 나가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다. 일을 하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성한 몸이 아니다. 탈장으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 힘든 일은 아예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한 달에 많아야 일주일, 적으면 하루만 일한 적도 있다.

할머니도 몸이 좋지 않다. 지난 1996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한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간신히 깨어났지만 지금도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이 심하다. 게다가 창원으로 이사 오고서는 중풍까지 와서 오른팔을 못 쓴다. 그런 몸으로 할머니는 부엌살림을 해 내신다.

전입신고 못하고 철거지역 생활

할아버지가 번 돈으로 월세 20만 원을 내고 나면 끼니 때우기도 어렵다. 몸이 아픈 할아버지와 할머니, 자폐증 삼촌에게 필요한 약은 살 엄두도 못 낸다. 식구가 사는 방은 늘 춥다. 연탄보일러로는 항상 온기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이는 밝다. 지난 학기 담임 선생님은 연이가 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에다 친구도 많고 성적도 좋아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처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연이에게 최근 좋은 일이 생겼다. 국제 NGO인 굿네이버스 경남 서부지부가 결식아동을 위한 방학교실을 진행하던 중 연이의 사정을 알고서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굿네이버스는 소식지에 연이의 사연을 소개하고 자체 모금운동을 벌여 전세금과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또 창원시청과 팔룡동 보건소의 도움을 받아 할아버지가 탈장 수술을 받았다.

굿네이버스 경남서부지부 박성현 간사는 일단 급한 불을 껐지만, 연이 가족이 충분한 보금자리를 갖추려면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이는 오늘도 방학교실이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건강을 먼저 살핀다. 그리고 연탄불을 확인하고 찬물에 설거지도 한다. 연이의 꿈은 선생님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게 좋단다.

한없이 부족하게 살면서도 베푸는 삶을 꿈꾸는 아이. 도움을 주고 싶은 이는 굿네이버스 경남서부지부(055-238-1240~1)로 연락하면 된다.

/경남도민일보 이균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