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추모제와 안장식이 9일 통영에서 열렸다.이날 오전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추모제를 지낸후 고인의 유해를 모신 꽃상여와 만장들이 통영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위) 장지인 산양읍 신전리 양지농원에서 박선생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
9일 오후 2시 20분 박경리 선생은 통영시 산양읍 양지농원의 흙이 됐다.
안장식이 끝나는 순간 전남 함평에서 보내온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았다. 육신은 흙이 되고 혼백은 나비로 날았다. 하관 때, 한 평도 되지 않는 그 좁은 공간에 선생의 육신이 갇힌다니 답답해졌다. 그 넓은 가슴이 저 틈에서 어찌 숨 쉴까. 그 유장했던 '강'이 저 속에서 어찌 흐를까.
그러나 추모제 때 다시 들었던 박경리 선생의 육성은 이런 걱정을 기우로 돌렸다. 2004년 11월, 선생이 5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시민문화회관에서 했던 말이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죽지 않는 것이에요. 당연히 돌고 돌아야 할 것들이 마치 정지되는 것과 같지요. 세상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서울 장례식장에서 이날 장지까지 자리를 지켰던 이근배 시조시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제 여기가 하늘의 토지가 되는 거죠. 선생에게는 이곳이 영원한 서재요, 집필실이 되는 것입니다."
선생이 북망산천으로 가는 길은 중요무형문화재인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장인이 앞소리로 길을 텄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으로 나는 간다 ~ 가자 가자 극락을 가자 파도 타고 극락을 가자." 선생이 이제 영원히 마주할 미륵도 앞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하관이 끝나고 그 위에 흙이 채워지자 유족인 외동딸 김영주 씨와 사위 김지하 시인의 눈동자가 더 퀭해졌다.
봉분이 얹히기 전 평평한 땅 위에서 평토제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갑자기 빨라진 북 장단에 맞춰 웃고 울었다.
"우짜든지 좋은 데 가소!" "선생님,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사람들은 선생에게 잠들라고 하지 않고, 잘 가라고 했다.
한편, 오전 추모제 때 진의장 통영시장은 생전 선생이 직접 전한 유품을 소개했다. 재봉틀과 국어사전, 소목장 등 셋이었다.
진 시장은 또 시 차원으로 소설부문의 박경리 문학상을 만들어 선생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렇게 선생은 통영 땅에서 영면에 들었다. 통영은 이날로 박경리 선생의 고향에서 문학의 고향으로 거듭났다.
/경남도민일보 이일균 기자
고 박경리 선생, 육필 원고 등 유품 28종 공개 '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경남도민일보 최현식 기자 |
2008/05/07 - [문화/생활] - 박경리 선생 삶의 흔적마다 조문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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