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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올 추석, 아들 얼굴 한번 봤으면…

15년째 아들과 생이별 이말분 할머니, 사업 실패로 연락두절 생사조차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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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말분 할머니. /박일호 기자 iris15@  
 
추석이면 유난히 더 외롭고 가슴 아픈 사람이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이말분(78·마산시 상남동) 할머니는 명절이면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이름 하나를 다시 끄집어낸다.

금쪽같은 아들 '강창문', 이번 추석에는 행여 올까? 아니면 안부전화라도 할까 기다리고 기다린다. 평소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나가지만 추석을 앞두고 외출을 삼가고 전화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대문 앞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서성인다.

그렇게 할머니가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들 이름을 끄집어냈다 다시 묻기를 15년. 그러는 동안 가슴은 누더기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할머니의 생이별은 아들이 15년 전 사업에 실패하면서 현재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껏 연락조차 없다. 할머니는 "15년 동안 연락이 되질 않지만 한순간도 아들을 잊은 적이 없다"며 "밥을 굶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서 한지붕 아래 얼굴 보며 사는 것이 죽기 전 소원"이라고 말했다.

아들을 만나려면 신령님께 빌어보라는 이웃의 말에 할머니는 방 한구석에 상을 차려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 밥을 떠 놓으며 지극 정성으로 빌고 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맘도 있지만 어디서 굶지 말고 살아만 있어 달라는 애절한 부모의 맘이다. 심지어 동지섣달 새벽 살을 에는 듯한 얼음물로 목욕을 하고 빌기도 했지만 여전히 소식은 없다며 애를 태우고 있다.

할머니는 아들로부터 연락이 끊긴 뒤부터 화병을 앓고 있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다시 화병이 도졌다.

새벽부터 폐지 주워 하루 끼니 해결해

소화도 안 되고 아랫배에서부터 주먹만 한 덩어리가 가슴 위로 치밀어 올라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다. 이야기 중 쉼 없이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는 "명절이면 간단히 밥과 국을 상에 올려놓고 혼자 남편 제사를 지내왔다"며 "먼저 간 남편에게 아들이 이승에 있건 저승에 있건 잘 좀 챙겨달라 부탁했는데 올해는 차례를 지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어릴 적에는 어미가 아프면 늦은 밤에도 멀리 있는 약국까지 가서 약을 사다주었다.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어미 대신 동생들 씻기고 저녁도 챙겨 먹이고 얼마나 효자였는지 모른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 나이 서른셋에 남편과 사별한 후 생선 행상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슬하에 자녀를 셋이나 두었지만 둘째 아들은 어린 나이에 잃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큰아들 외에 하나 있는 딸도 사위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형편이 어려워 전화 연락만 가끔 할 뿐이다.

지금 할머니는 마산 상남동의 부엌 딸린 단칸방에서 정부 보조금 30만 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방세 10만 원을 주고, 빌린 보증금 100만 원의 원금과 이자 7만 원을 낸다. 나머지 13만 원으로 한 달 버틴다. 생계는 고물을 모아 판 돈으로 하고 있다. 새벽부터 폐지를 주워 하루에 버는 돈은 3000원가량, 운이 좋은 날엔 5000원도 된다. 이것으로 끼닛거리를 사고 나머지는 담배를 산다.

최근 할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월세로 있는 상남동 집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집 일부가 헐린다. 주인집에서 나가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집을 수리하는 동안 거처할 곳이 없어 고민이다.

추석이 지나면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알아보니 300만 원 이상의 보증금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할머니는 "얼른 죽어야 할 텐데 아들이 눈에 밟혀 죽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 볼 수 있게 해 달라"며 쉼 없는 눈물을 흘렸다.

/경남도민일보 유은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