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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결혼이주새댁의 첫 명절 준비…송편도 부침개도 차례상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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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에서 남편 이호근 씨를 따라 하동으로 온 춤 스레이 켄 씨가 명절에 해야 될 음식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고 있다. /장명호 기자  

남편을 따라 낯선 이국땅으로 건너 온 춤 스레이 켄(캄보디아·22) 씨는 처음으로 맞는 명절을 준비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지난 2월 이호근(48·하동군 하동읍) 씨를 만나 하동으로 오게 된 켄 씨에게는 이번 추석이 첫 명절이다. 그래서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켄 씨는 추석 차례 음식을 만들 재료들을 메모지에 꼼꼼이 적었다.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비뚤했지만, 마치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듯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켄 씨는 일단 지난 10일 하동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명절 음식 만들기' 행사에서 배웠던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캄보디아서 온 켄 씨 복지관서 배운 송편 만들기로 분주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 켄 씨였지만, 혼자서 쌀과 떡에 넣어야 할 고물들을 '척척' 챙긴 뒤 떡방앗간으로 향했다. 손끝이 야무지다는 말에 켄 씨는 고국인 캄보디아에서 농사일을 많이 해 봤다며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라고 은근히 자랑을 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 온 뒤 남편의 건강을 위해 사랑의 요리를 만든다고 각종 야채들을 씻고 다듬는 등 한바탕 소란을 피우던 켄 씨는 결국 김치찌개로 점심상을 차렸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가수 비가 출연한 〈상두야! 학교가자〉라는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켄 씨는 가수 비의 열렬한 팬이다. 그래도 남편인 이호근 씨가 가수 비보다 훨씬 좋다며 '남편, 사랑해'라고 애교를 부린다. 이호근 씨도 덩달아 '사랑해'라며 켄 씨에게 기습 뽀뽀를 하는 등 닭살이 심하게 돋을 정도의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남편의 애정공세에 약간 부끄러워하던 켄 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자반고기, 부침개 등 차례상에 올려야 할 음식이 생각난 것.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부리나케 하동읍 시장으로 달려갔다.

"깎아주세요, 좀 더 주세요" 라며 아주머니 상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켄 씨는 외국에 시집 온지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댁이 아닌 마치 베테랑 주부같았다. 그러나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낯설고 서툰데다 시부모님까지 일찍 돌아가셔서 명절 음식을 혼자서 준비해야 하는 켄 씨는 이번 추석이 무척 힘들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자 남편 호근 씨는 아내의 어깨를 주무르는 안마는 물론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과·배 등 과일을 직접 깎아 먹여줬다.

알콩달콩 사랑놀음에 빠진 이들 부부. 언제쯤 차례음식을 모두 만들고 제대로 만들게 될지 걱정부터 앞선다. 켄 씨는 "매일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2명의 동생이 보고싶어 남편 몰래 운 적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 좋아요"라며 "이번 추석이 지나면 한국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해군 남해읍에 살고 있는 윈 휜티 슝(베트남·23) 씨도 과감히 명절 음식만들기에 도전장을 던졌다. 남해문화원에서 한글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휜티 씨는 민소매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한국음식은 만들지 못한다. 흔하디 흔한 김치찌개도 아직은 역부족이다.

남해 윈 휜티 슝 씨-시어머니, 모녀처럼 음식 장만 '눈길'

그러나 오늘은 부침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양식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어머니의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남해문화원에서 명절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 자신감도 생겼다. 휜티 씨는 고향 생각이 날 때 듣는다는 베트남 음악을 틀어 놓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고구마를 씻고 적당한 두께로 썰었다.

그러나 칼이 고구마에 박혀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등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칼 등을 주먹으로 때리며 겨우겨우 고구마를 장만한 휜티 씨는 고민에 빠졌다.

'힘든데 이대로 그만둘까', '잘 만들면 칭찬을 받을텐데'라는 양 갈림길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휜티 씨는 시어머니에게 칭찬을 받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튀김옷을 입힌 고구마를 펄펄 끓는 기름속에 넣었다. 노랗게 익어가면서 풍기는 냄새에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임신 5개월로 무거워진 몸과 더운 열기로 땀이 비오듯 했지만, 시어머니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더운 줄도 모른다. 그러나 부침개가 거의 마무리됐을 쯤, 집으로 돌아 온 시어머니의 한마디에 휜티 씨는 기절해버렸다. '아가, 우리집은 차례상에 고구마 부침개 안 올린다. 니나 마이 무라.'

그래도 휜티 씨는 예쁘게 잘 만들었다는 시어머니의 칭찬에 "엄마, 나 잘했지"라며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줄게요"라고 응석을 부렸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아닌 딸과 어머니같은 이들은 추석이 안겨준 또다른 가족애를 느끼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장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