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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한 젊은 의사의 외로운 싸움

불합리한 당직관행 바로잡으려다 "조직 질서 어지럽혔다" 징계 받아

지난해 10월 창원 파티마병원 산부인과에서 일하던 한 젊은 의사가 경남지방노동위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서를 냈다. 같은 해 9월 병원은 이 의사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었다. 지노위는 지난 6일 이 징계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 의사는 지금도 출근을 하지 못한다. 이 젊은 의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노위 결정문 등 관련 서류를 근거로 이를 재구성했다.

창원 파티마병원 산부인과 손성민 과장(38)은 지난 2006년 4월 창원파티마병원에 입사했다. 막 군 복무를 마친 그에게는 첫 직장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손 과장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부인과에 일하는 의사는 7명. 모두 과장이라 부른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외래진료, 분만, 산부인과 관련 수술, 병실업무, 근무 등의 일을 한다. 당직 중에서도 평일 당직은 밤새 근무를 하며 분만 등 응급환자를 봐야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다.

손 과장은 젊은 의사 5명의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게 불만이었다. 나이 많은 선임 과장 둘은 평일 당직 근무를 전혀 서지 않았다. 심지어 이들의 이름으로 입원한 환자의 분만도 젊은 의사들 몫이었다.

자신들이 원래 해야 하는 진료 업무 외에도 이들 선임 과장의 일까지 하다 보니 젊은 의사들은 항상 업무량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만큼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의사 이름으로 입원이나 외래 진료를 하느냐로 실적을 판단해서다.

손 과장을 포함한 젊은 의사들은 우선 당직 체계를 바꿔보기로 했다. 지난해 4월 젊은 의사 5명은 선임 과장을 찾아 평일 당직을 7명이 골고루 서자는 제안서를 냈다. 그리고 '각자 환자는 각자 보자'며 제안서 당직표대로 근무를 하려 했다.

하지만, 두 과장은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의사들은 지난해 5월 새 당직표가 담긴 이 제안서를 병원장을 포함해 각 부서장에게 보냈다. 이로써 산부인과 내부 문제가 병원 전체에 알려졌다. 병원장 등이 중재에 나서면서 일은 해결되는 듯했다. 지난해 7월 새 당직표가 시행됐다.

이 과정에서 젊은 의사 중 주도자격인 손 과장과 ㄱ 과장의 신경전은 치열했다. 손 과장은 자신이 당직을 서는 날이어도 ㄱ 과장의 환자가 오면 그를 불러내 분만이나 진료토록 했다. 이는 ㄱ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보니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날도 잦았다.

병원은 지난해 9월 4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손 과장에게 견책 처분을 내리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이유는 △주임과장이 작성한 당직표를 무시하고 별도의 당직표를 만들어 돌렸고 △당직 근무 중 업무를 게을리했으며 △직원 간 폭언을 하고 △병원장이 경고했음에도 무례한 행동을 계속했다는 것이었다.

손 과장은 끝까지 이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9월 초 손 과장이 ㄱ 과장을 찾아가 따지는 과정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병원은 다시 손 과장을 불러 인사위원회를 열고자 했다. 하지만, 손 과장은 이를 계속 거부했다. 같은 달 22일 병원은 손 과장이 출석하지 않은 채 인사위원회를 열고 △당직 근무 중에 계속 ㄱ 과장을 호출한 점 △ㄱ 과장을 가두고 폭언을 한 점 △징계에 따른 경위서를 내지 않은 점을 들어 정직 2개월을 결정했다.

손 과장은 부당징계 구제신청서에서 산부인과 진료와 업무를 합리적으로 바꾸고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유독 자신을 싫어하는 ㄱ 과장과 마찰이 생긴 게 이번 일의 발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ㄱ 과장을 가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병원 쪽은 지노위 답변서에서 손 과장을 두고 산부인과 분란의 원인이라고 했다. 선배에게 대드는 등 조직 위계질서를 어지럽히고 병원장 말을 듣지 않는 등 손 과장이 파티마병원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의사라는 게 이유다.

지노위는 결정문에서 견책 처분은 정당하지만, 정직 2개월은 사용자가 징계권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지노위는 손 과장이 당직 근무 중 자신이 주치의가 아니고 자기 환자가 아니라며 진료를 거부했다 하더라도 △젊은 의사 5명이 당직 형평성을 높이려 제안한 개선안이 받아들여졌고 △산부인과 내에서 합의해 새 당직표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으며 △새 당직표를 시행하면서 손 과장이 실제 ㄱ 과장이 서야 할 당직을 대신 섰고 △손 과장이 그동안 진료 업무를 성실하게 봐 왔으며 △병원 취업규칙상 견책이 두 번 이상이어야 정직 처분을 할 수 있는데 견책 한 번에 이어 바로 정직 처분을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지노위는 손 과장이 의사라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월등한 도덕성이 필요한데도 진료를 거부한 점과 당직 체계를 바꾸는 과정에서 다소 마찰을 일으킨 점을 두고 병원이 견책 처분을 한 것은 정당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지노위는 병원이 정직 처분을 취소하고 정직 기간에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한편, 병원은 정직 징계가 끝난 지난달 6일 손 과장에게 다시 발령 대기를 통보했다.

손 과장이 내용 증명을 통해 이의를 제기하자 병원 쪽은 △손 과장이 병원 운영방침이나 규칙을 무시하고 계속해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는 병원 설립이념에 맞지 않으며 △이런 태도가 개선되지 않고는 우리와 함께 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손 과장도 이대로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지노위 결정을 병원 쪽에서 어떻게 처리할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경남도민일보 이균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