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기쁜 전화를 받았다. "표 기자! 할매 책 도착했다."
의령의 전찬애(67) 할머니가 소원풀이를 한 게다. 자신의 살아온 삶을 담은 책이 드디어 나왔단다. 이제 책도 냈으니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만 하다. 할머니는 '장골목에서 과일 노점을 하며 글 쓰는 할머니'로 유명하다. <2004년 9월 24일 자 보도>
할머니와 첫 만남은 지난 200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령읍장에서 과일을 팔며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를 찾아갔다.
의령읍장 남천탕 모퉁이에서 과일 노점을 하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셔츠에 꽂힌 볼펜을 봤을 때 '헛걸음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멀찍이서 한참 지켜봤다. 손님이 없으면 쭈그려 앉은 채로 글을 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할머니와 만남은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과일을 풀어놓은 노점 한쪽에 앉아 할머니는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금껏 종이에만 담아두었던 지난 이야기였다. 책 제목 <고향 떠난 두 남매의 길>을 따라나선 셈이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첩살이로 어머니와 오빠가 쫓겨난 데서부터 시작한다. 한없이 깊은 골짝으로 떨어졌을 때는 애끓다가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오를 때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충청도 청주로 터전을 옮긴 지 5년 만에 중풍을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믿고 의지했던 오빠도 저세상으로 가버려 혈혈단신 꿋꿋하게 버텨냈다. 부산에서 장사를 하면서 돈도 벌어 지난 1998년 청주에 있던 어머니와 오빠의 묘도 고향 의령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살아온 삶을 기록했다. 원고지 1000장 분량이었다. 보자기에 싸놓은 원고를 풀어놓으면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의령읍장 모퉁이서 과일 노점…손님 없을 땐 쭈그려 내내 습작
첩살이 어머니 고단한 삶 담아…발간된 책 받자마자 눈물부터
"기자 양반, 책 낼 방법 없나요." 과일 팔다가도 쓰고, 원고지가 없으면 과일 상자 누런 골판지에도 눌러 쓰고. 책 내고 싶어서 청와대에도 찾아갔을 정도다.
그렇게 할머니가 걸어온 길과 글을 쓰는 사연, 책 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했던 게 지난 2004년 가을이다. 어떤 때는 할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고 어쩌다간 한 계절이 지나서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런 때는 봄에 고추 심느라, 가을에 감 따러 다니느라 바빴다고 한다. 항상 첫마디는 이렇다. "표 기자! 할매다." 책 내는 이야기를 할 때는 목청도 높아진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할머니는 바빴다. 서울 출판사에 다녀오고 몇 주가 지나 계약을 한다더니 이렇게 올봄에 책이 나오다니 나 또한 꿈인가 싶다.
할머니는 지난 12일 아침에 도착한 책을 안고 울었단다. "너무 감동해서 울었다. 일곱 살 때 꿈이 이뤄졌는데 눈물이 안 나겠나." 그날 밭에 생강 심으러 간 길에 어머니 묘에 책을 바쳤단다. 또 어머니 앞에서 울었단다. 60년 동안 품어온 꿈을 이뤘으니 어찌 눈물이 안 나겠나.
할머니 책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허허벌판 위에 외로운 소나무 하나가 어쩌다가 다 잃고 쓸쓸히 서 있는데 인정사정없는 송충이들이 그 나무를 울리고 있네. 그러나 그 소나무는 사나운 송충이들에게 울음을 보이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네. 배고픈 송충이들이 죽어서는 안 될 소나무를 없애려 할 적에, 그 소나무를 가엾게 여겨 크나큰 학들이 날아와서 소나무를 에워싸고 있네. 외로운 그 소나무는 이제 번성하여 외로운 들판을 장식하고 오고 가는 길손님들이 자기 곁에서 피곤한 몸을 풀고 가게 하네.' 물어보지 않아도 소나무는 할머니다.
지금은 진해 경화동 농협 옆에서 과일장사를 하고 있지만 곧 의령으로 돌아갈 참이다. 3·8일 의령장에서 펜을 놓지 않고 계속 글을 쓸 거라고 했다.
"어려운 사람도 돕고 나를 도와준 사람들 이야기를 써야지. 열심히 더 노력하면서 또 할기라."
또 다른 꿈도 꾼다. <고향 떠난 두 남매의 길>을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하고 싶단다. 아마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까지 할머니 전화를 받아야 할 거다. "표기자! 할매다.", "예! 할매."
<고향 떠난 두 남매 길>은 '삶과 꿈'에서 펴냈으며, 책값은 1만 2000원. △마산 : 대신문고, 그랜드문고 △창원 : 경남문고, 창원서적 △진주 : 종로서점 △부산 : 한성서점, 영광도서, 동보서적에서 만날 수 있다.
/경남도민일보 표세호 기자(기사 원문 보기)
의령의 전찬애(67) 할머니가 소원풀이를 한 게다. 자신의 살아온 삶을 담은 책이 드디어 나왔단다. 이제 책도 냈으니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만 하다. 할머니는 '장골목에서 과일 노점을 하며 글 쓰는 할머니'로 유명하다. <2004년 9월 24일 자 보도>
할머니와 첫 만남은 지난 200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령읍장에서 과일을 팔며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를 찾아갔다.
의령읍장 남천탕 모퉁이에서 과일 노점을 하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셔츠에 꽂힌 볼펜을 봤을 때 '헛걸음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멀찍이서 한참 지켜봤다. 손님이 없으면 쭈그려 앉은 채로 글을 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할머니와 만남은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과일을 풀어놓은 노점 한쪽에 앉아 할머니는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금껏 종이에만 담아두었던 지난 이야기였다. 책 제목 <고향 떠난 두 남매의 길>을 따라나선 셈이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첩살이로 어머니와 오빠가 쫓겨난 데서부터 시작한다. 한없이 깊은 골짝으로 떨어졌을 때는 애끓다가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오를 때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충청도 청주로 터전을 옮긴 지 5년 만에 중풍을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믿고 의지했던 오빠도 저세상으로 가버려 혈혈단신 꿋꿋하게 버텨냈다. 부산에서 장사를 하면서 돈도 벌어 지난 1998년 청주에 있던 어머니와 오빠의 묘도 고향 의령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억척스럽게 살아온 삶을 기록했다. 원고지 1000장 분량이었다. 보자기에 싸놓은 원고를 풀어놓으면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의령읍장 모퉁이서 과일 노점…손님 없을 땐 쭈그려 내내 습작
첩살이 어머니 고단한 삶 담아…발간된 책 받자마자 눈물부터
"기자 양반, 책 낼 방법 없나요." 과일 팔다가도 쓰고, 원고지가 없으면 과일 상자 누런 골판지에도 눌러 쓰고. 책 내고 싶어서 청와대에도 찾아갔을 정도다.
그렇게 할머니가 걸어온 길과 글을 쓰는 사연, 책 내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이야기를 세상에 소개했던 게 지난 2004년 가을이다. 어떤 때는 할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고 어쩌다간 한 계절이 지나서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런 때는 봄에 고추 심느라, 가을에 감 따러 다니느라 바빴다고 한다. 항상 첫마디는 이렇다. "표 기자! 할매다." 책 내는 이야기를 할 때는 목청도 높아진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할머니는 바빴다. 서울 출판사에 다녀오고 몇 주가 지나 계약을 한다더니 이렇게 올봄에 책이 나오다니 나 또한 꿈인가 싶다.
할머니는 지난 12일 아침에 도착한 책을 안고 울었단다. "너무 감동해서 울었다. 일곱 살 때 꿈이 이뤄졌는데 눈물이 안 나겠나." 그날 밭에 생강 심으러 간 길에 어머니 묘에 책을 바쳤단다. 또 어머니 앞에서 울었단다. 60년 동안 품어온 꿈을 이뤘으니 어찌 눈물이 안 나겠나.
할머니 책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허허벌판 위에 외로운 소나무 하나가 어쩌다가 다 잃고 쓸쓸히 서 있는데 인정사정없는 송충이들이 그 나무를 울리고 있네. 그러나 그 소나무는 사나운 송충이들에게 울음을 보이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네. 배고픈 송충이들이 죽어서는 안 될 소나무를 없애려 할 적에, 그 소나무를 가엾게 여겨 크나큰 학들이 날아와서 소나무를 에워싸고 있네. 외로운 그 소나무는 이제 번성하여 외로운 들판을 장식하고 오고 가는 길손님들이 자기 곁에서 피곤한 몸을 풀고 가게 하네.' 물어보지 않아도 소나무는 할머니다.
지금은 진해 경화동 농협 옆에서 과일장사를 하고 있지만 곧 의령으로 돌아갈 참이다. 3·8일 의령장에서 펜을 놓지 않고 계속 글을 쓸 거라고 했다.
"어려운 사람도 돕고 나를 도와준 사람들 이야기를 써야지. 열심히 더 노력하면서 또 할기라."
또 다른 꿈도 꾼다. <고향 떠난 두 남매의 길>을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하고 싶단다. 아마 드라마가 만들어질 때까지 할머니 전화를 받아야 할 거다. "표기자! 할매다.", "예! 할매."
<고향 떠난 두 남매 길>은 '삶과 꿈'에서 펴냈으며, 책값은 1만 2000원. △마산 : 대신문고, 그랜드문고 △창원 : 경남문고, 창원서적 △진주 : 종로서점 △부산 : 한성서점, 영광도서, 동보서적에서 만날 수 있다.
/경남도민일보 표세호 기자(기사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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