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증명해야' 불합리…긴 소송 기간, 승소해도 막막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렵고 승소율이 낮은 게 의료사고 소송이다. 어떤 이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한다. 일반인과 전문가의 싸움이라서 그렇다. 설사 이기더라도 겨우 본전이다.
한국 사람의 사망 원인 중 6번째가 의료사고라는 말이 있다. 진료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배속에 수술 가위가 들어 있다거나 하는 건 누가 봐도 의료진이 잘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사를 놓거나 마취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인과 관계가 애매해진다. 사람은 죽었지만 왜 죽었는지 모른다.
'황당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로 인정을 받으려면 의료진이 아닌 피해자가 이를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는 대개 소송보다는 병원과의 협상을 택한다. 하지만, 소송을 택해 불굴의 의지로 승소하는 피해자도 있다.
이런 우리 사회 의료 사고 현실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김기석(38) 씨는 원래 마산 어시장에서 물차 운전을 했다. 월수입도 1000만 원 정도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1월 12일 창원에서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다음 날 김 씨는 마산의 한 병원에서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이 잘 못 됐는지 뼈 사이로 살이 차올랐다. 그래서 4월 11일 다시 수술을 했다. 그렇게 입원을 하고 있다가 5월 19일 목감기에 걸려 내과에서 항생제 정맥 주사를 맞았다. 그날 병실에 있던 김 씨는 갑자기 의식이 흐려졌다. 그는 간호사를 부르러 일어나려다 의식을 잃었다. 병문안 온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 김 씨는 어떤 조치도 받지 못했다.
이후 김 씨는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는 뇌성마비나 외상성 뇌손상·뇌졸중(중풍) 등으로 뇌가 상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뇌병변장애인은 앉기·서기·걷기 등 기초적인 동작을 잘하지 못하고 시각장애나 청각장애 등 다른 장애가 같이 오기도 한다.
가족은 김 씨가 단기 기억 상실이 심하고 숫자 계산을 못 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지능이 5~6세 수준이란다. 김 씨는 현재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 달 치료비가 많으면 450만 원까지 든다.
올해 1월 16일까지는 사고가 난 병원에서 병원비와 치료비를 댔다. 하지만, 가족이 지난해 말 이 병원을 상대로 법원에 신청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이 돈을 뚝 끊었다. 지금까지는 도의적으로 병원비를 댔지만 일단 소송이 시작됐으니 결과를 보고 정말 병원 쪽 과실이 확실하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거다. 난감해진 김 씨 가족은 보름이 넘게 병원 앞에서 병원비를 내 놓으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 씨의 누가 김순미(41) 씨는 소송을 진행하면 최소한 2년 반에서 3년이 걸린다며 그 긴 세월동안 가족이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지난해도 어깨 골절 수술을 하던 환자가 갑자기 숨져 의료 사고 논란을 일으켰었다.
김 씨와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1999년부터 의료 관련 피해구제 업무를 시작했다. 지난 2005년까지 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매년 의료분쟁 건수가 늘고 있다.
1999년에는 271건이었는데 2000년에는 450건으로 늘었다. 이어 2001년 559건, 2002년 727건, 2003년에는 661건이었다. 계속해 2004년에는 885건이던 것이 2005년에는 1093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의료 사고와 관련한 민사소송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8월 26일 경희의료원이 연 의료분쟁과 진료 민원 예방세미나에서 새서울합동법률사무소 조영환 변호사는 의료분쟁과 관련된 민사소송 현황을 발표했다.
조 변호사는 지난 2000년 의료분쟁 본안 제1심 사건은 총 508건이었고 2001년에는 519건, 2002년 666건, 2003년 671건, 2004년 755건, 2005년 802건으로 6년 동안 60%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 2006년에는 의료 사고 관련 민사소송 1000건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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