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영향, 업소 여성 줄었지만 정부·지자체 적극적 의지 아쉬워"
'현장상담센터'가 '경남 여성인권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2004년 9월 여성가족부 인가로 마산YWCA 부설기관으로 있던 센터가 올해부터 '이유 있는 명칭 변경'을 했다고 알려왔다. '경남 여성인권지원센터'는 경남 도내에서 유일하게 국가 지원을 받는 성매매 피해 상담소다. 8일 오후 1시 30분 경남데파트 맞은편에 있는 '경남 여성인권지원센터'를 찾아 박선애 소장(41·마산시 완월동)으로부터 사연을 들었다.
"저희 단체가 '현장센터'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저희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려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성매매라는 단어를 넣으면 낙인찍힐 수 있기에 이름을 정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현장센터'라고 하니, 어떤 남자분이 전화를 해서 막노동하는 곳인 줄 알고 전화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처음 단체가 생긴 게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성매매 피해 여성이 있는 '현장'에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관을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마산의 성매매 집결지인 신포동에 현장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모호한 면이 있어서 경남 여성인권지원센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박 소장은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법률에 가칭으로 '현장센터'를 두도록 해 놓았는데, 그러면서 굳어진 이름을 지금은 전국적으로 바꾸는 추세라고 했다. 전북 여성인권지원센터, 부산 여성인권지원센터가 그 예다.
"센터 개소부터 지금까지 소장으로 만 3년 넘게 일해 왔습니다. 처음 소장인 저와 직원 두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운전했고, 처음 센터에 온 어린 직원들이 성매매 여성 상담을 어려워해 제가 도맡아 했고, 여성들이 한밤중에 지원을 요청하면 제가 긴급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센터를 꾸려왔습니다.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조차도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해 금방 센터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 단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센터는 성매매 업소를 찾아가 폭행이나 감금 등의 문제가 있는지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고,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법률 지원 등의 상담을 해 오고 있다.
현재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국번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여성긴급전화 1366'으로 전화를 하면, 자동으로 성매매 관련 단체인 지역 센터(055-246-8297(빨리구출))로 전화가 연결돼 상담을 하는 체계다.
"현장 근처에서 성매매 현장을 감시하고, 예방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희 센터를 찾아오는 이들은 다른 지역 성매매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산에 있는 성매매 피해 여성은 대구나 서울로 가고, 서울, 대구에 있는 여성은 마산에 있는 센터를 찾는 겁니다. 업소에서 가능한 한 멀리 가려는 생각에서 말이죠. 얼마 전엔 서울에서 성매매 업소에서 부당한 빚 때문에 탈출한 여성이 저희 센터를 찾았는데, 업소 사장이 고소를 취하하게 했습니다."
박 소장은 많은 여성이 성매매 손해를 입으면서도 '생계' 등의 이유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2007년까지 불법인 성매매 업소를 단계적으로 없애나가기로 했습니다. 특별법 시행 후 마산은 집결지에 업소가 줄어, 이곳에 300명에 달하던 성매매 여성이 100여 명으로 줄긴 했습니다. 2010년까지는 모든 업소를 없앤다고 했지만, 정부, 지자체가 의지를 갖추고 일을 해나가야 하는데 적극적이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박 소장이 제자리를 지켜내는 이유는 뭘까.
"평범한 주부로 아이를 키우다 '마산 사랑의 전화'에서 일어 수업을 들었던 게 삶을 바꿨습니다. 일어수업을 들으러 갔다 여성 상담 교육을 보고 수강하게 됐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새로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여성 문제에 더 관심을 뒀고 성교육 강사로 10년을 일했는데, 센터 소장 제의를 받아 지금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운수업을 하는 남편이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해보라고 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장성한 두 아들도 마찬가지고요. 주위 친지들은 센터 일을 하면서 인상과 말투가 변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는 여성들을 도와서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줄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안타까움과 울분으로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일노점 할매' 고대하던 책 내다 (2) | 2008.04.15 |
---|---|
교도소에서 온 편지 (0) | 2008.01.15 |
진해 진삼승 씨, 식사대접·목욕봉사 등 사랑 실천 (0) | 2008.01.15 |
4인의 '발해 뗏목' 탐사대 23일, 10주기 추모 행사 (0) | 2008.01.11 |
'60년 시국 선언문 낭독' 장덕수 선생 별세 (1) | 2008.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