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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0년 늦게 보낸 할머니의 '사랑 편지'

"당신이 살아있으면 더 좋으련만…사랑합니다"
하동 옥종중 '다문화 문해반' 이증수 할머니 뒤늦게 한글 깨치고 쓴 애틋한 편지 '화제'


 
 
  사별 후 30년 만에 한글을 깨치고 남편에게 쓴 이증수 할머니의 사랑편지.  
 
'우리가 살아서는 부르지 못했건만 이제야 불러 봅니다. 당신이라고….'

한글을 뒤늦게 배우는 60대 늦깎이 학생이 30여년 전 하늘나라로 먼저 간 남편에게 애틋한 그리움이 담긴 사랑의 편지를 보내 주위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경남 하동 옥종중학교에서 지난 1월부터 내년 8월말까지 노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다문화 문해반' 학생인 이증수(68) 할머니가 30여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 하한진씨에게 처음으로 사랑의 편지를 보낸 것.

이 편지는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비뚤비뚤하지만, 30여년간 가슴으로 울어야 했던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처음으로 연애편지를 보내는 소녀같은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송강 정철의 한 여인이 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미인곡'보다 더 진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서 당신이 가신지 어언 삼십년, 살아 계셨으면 74살, 내 나이는 68살 연분좋은 나이였지요. 아들 사남매 다 결혼했고 다 잘 살고 있어요. 손자가 여섯명, 손녀가 네명이나 됩니다. 당신이 있는 그 곳에도 가을이 있나요. 모르시겠지요. 온갖 나무는 가을이라 단풍이 들었고, 나뭇잎은 온갖 색깔을 내고 있는데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없군요…하한진 씨 사랑합니다. 잘 계세요."

이증수 할머니가 남편 고 하한진 씨에게 보낸 이 사랑의 편지는 지난 10월말 우체국에서 개최한 편지쓰기 대회에 응모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초등학교는 물론 정규교육 한 번 받은 적이 없어 한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전혀 몰랐다.

그러나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2시간 동안 옥종중 이정희(43) 교사와 북천중 권향주(47) 교사로부터 한글 수업을 받으면서 한글을 깨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한글을 깨치게 된 이 할머니는 그동안 가슴 속에만 감춰뒀던 남편에 대한 30년간의 그리움과 사랑을 편지지에 옮겨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보낸 것.

이증수 할머니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도 단 한번도 당신이라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며 "한글 깨치기 수업을 통해 3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사랑의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남도민일보 장명호 기자